이름: yong27 (yong27@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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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3/17(수) 01:42 (MSIE6.0,WindowsNT5.0) 218.147.213.106 1024x768
감동받기쉬운 부위  
사람마다 감동받기 쉬운부위가 따로있다.

이 생각은 예전에 바이오컴세미나 준비하면서 혼자 생각했던 것중 한가지. 지금 문득 떠올라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본다.

나는 중고등학교시절, 교회생활을 열심히했다. 지금의 나는 그렇지 못하지만, 그당시는 회장, 총무등 역할을 하며, 주말의 거의 모든시간을 교회에서 보냈으니 말이다. 가끔씩 수련회 및 기도회에서 은혜를 받았다면서 눈물흘리는 선배 및 친구들을 보고, 아 나도 저런 기분을 느껴봐야겠다는 생각에 말씀에 찬송에 집중에 집중을 했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잘 오지않았다.

내가 사전지식이 부족했기때문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나름대로는 성경공부도 했고, 믿음도 있었고,,, 더욱이 신앙생활 얼마 안된 친구도 그런 느낌을 받는걸 보고... 내 머릿속은 도대체가 어떻게 되어있길래 난 안그럴까 속으로 원망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그런 분위기에 휩싸일때면, 나도 은혜받은 척 한 표정을 애써 지어야만 했던... 지금 생각하면 약간은 민망한 경험이다.

대학에 가고, 학생회활동을 하다가 단대학생회쪽에 잠시 몸담았던 적이 있다. 학생운동에 관여하다보면, 댓걸이(세미나)라는 것을 통해 일종의 스터디를 하게 된다. 이 스터디를 통해서, 한국현대사의 많은 문제점들을 인식할 수 있었고, 고통받는 민중에 대한 아픔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몇몇 시위에 나갈 기회, 혹은 몇몇 술자리에서 정말 많이 흥분한 학우들도 볼 수 있었다. 민중의 고통을 상상하며 마치 자신의 고통인것처럼 눈물을 흘리고, 시위에 앞장서는 학우들... 솔직히 그런 학우들의 열정이 부러웠고, 나또한 그렇게 되어보고자 노력했으나, 잘 되지않았다. 와닿지가 않았다고 할까.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지가 않으니, 내 행동이 마치 가식적인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사전지식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댓걸이가 부족했고, 그것들에 덜 집중했으며, 직접 민중의 고통을 함께 나눌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아닌것이 몇몇 학우들은 그리 많이 준비되지 않아보이는대도 불구하고, 잘하더라는 것이다. 나의 머리는 왠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것처럼 보였다.

군대다녀와서, 놀곳(?)이 없어서 전진했던 도서관죽치기에 습관화되어 전공공부에 재미들리던중, 생화학공부할때의 일이다. 내가 예전부터, 과학분야, 그중에서도 생명현상에 관련된 부분은 계속해서 관심이 있던터라, 대학전공도 이쪽을 선택한것이고, 군제대후에도 전공공부에는 특별히 시간할애를 많이 하고 있던 중이였다. 생명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 DNA라는 것이 있다는건 고등학교때의 생물학수업으로 알고 있었고, 각종 전공교양도서등을 통해서, 이 유전물질에 대한 신비함등은 상식적인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던 그 시기에... 내딴에는 놀랄만한 내용을 접하게 되는데.. 바로, RNase효소의 denaturation실험을 통해 단백질의 입체구조는 그 서열에서 유래한다는 내용이다.... 이 내용에 난 충격을 받았다. 이로써, 머리속에 생명원리가 좌악 이어지는게 아닌가, 아... 그래서 유전자서열이 생물학적 기능을 결정하는구나 하고...

갑자기 전공용어가 등장해서, 좀 웃기기도 하지만, 암튼, 이순간 나 자신이 뭔가 대단한 흥분상태에 도달하고 있슴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온세상 생명원리를 다 이해한듯한....(좀 거만한 표현이군 ㅡ.ㅡ). 그리고는 그 이후, 생화학, 분자생물학에 이르기까지 흥분상태로 전공공부를 했고, 덕분에 학점도 좋고, 또 그 덕에 지금까지 전공관련 직업을 갖고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난 이 흥분상태를 감동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 감동은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 아니였다. 나의 감동을 동료학우들, 동아리 후배들 및 친구들, 내 주변사람들에게 흥분해가며 설명해봤으나 그들은 나처럼 흥분하지 못했다. 오히려 날 이상한듯이 처다보는듯... 아, 같이 흥분했던 몇몇은 있다. 같이 전공했던 92학번 영두선배... 그 형하고 난 이런식으로 전공얘기하며 토론하길 좋아했었는데...

이 짧은 사건, 아니 시간적으로는 꽤 길었던 경험을 통해서 나는 한가지 결론을 내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감동받는 부위가 따로 있다고... 그것은 각 개인의 인격과, 개성에 의한 것으로서, 사람마다 다른 것이라고... 나는 목사님 말씀을 인식하는 부분보다, 생명현상의 과학적설명을 인식하는 부분이 더욱 감동에 민감하며, 이러한 나 특이적인 감동에 민감한 부위들이 모여서 나의 스타일을 지배하고, 개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는 결론...

이러한 나의 개성 및 스타일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유전적영향, 환경적영향, 내가 자라오면서 접한 각종 교육들, 만나온 모든 사람들, 책,영화,경험등이 모두 서로 영향을끼쳐서 만들어졌을것이다. 쉽게 변하지 않을것이면서도, 의외로 생활태도의 변화를 통해 어느정도는 변화를 내 의지대로 만들수도 있을것도 같은......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것들의 총체적이면서도, 다이나믹한 집합이라고 여겨진다.

이것은, 누구에게 강요될 수 없다. 내가 생화학에 감동했으니, 너도 이것에 감동해야한다라고 강요할 수 없고, 내가 어제본 영화에 감동했으니, 너또한 이 영화에 기필코 감동해야한다고 말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감동의 부위는 따로 있기때문이다. 마치 인간게놈의 유전자들로만 가지고, 인간형질의 전체를 예측할 수 없을정도로... (이 표현에 문제를 삼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각 유전자는 서로서로에게 무한히 복잡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유전체학을 공부하시는 분이라면 이 표현에 공감하시리라)

이 글을 쓰는 순간 문득 든 생각인데, 어떤것이 바람직한 인격체의 성장방향일까. 아직은 나 자신이 이런 대답을 내릴 수준이 못되지 않나 생각하면서도, 슬쩍 대답해보자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향" 이 아닐까...





강현진: 그 때..같이 흥분하지 못했던 이유는..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ㅋ  -[03/17-16:49]-

misslotte: 참 재밌다...내용이 너무 재밌어...  -[03/23-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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