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2-1884. Genetics의 아버지.
1865년 수도원에서의 완두콩실험결과를 정리한 논문을 브룬 자연과학회지에 제출했으나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연구를 단념. 이후 평범한 수도원신부의 생활을 계속함
그가 죽은지 16년이 지나서야 사람들은 그의 업적을 깨달았다.
멘델신부는 34세에 수도원 정원에서 콩을 심고 실험을 시작했따. 1860년에만 6000그루의 식물을 심었다. 정리한 내용을 기고했으나, 아무도 알아주지 못했다. 그러면서 멘델은 브룬의 수도원장이 되면서 바빠졌고, 정원에 조금씩 흥미를 잃어갔다. 그의 말년은 정부가 수도원에 부과한 새로운 세금징수에 반대하는 고독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멘델은 그 세금을 지불해야만 했던 마지막 대수도원장이었다. 노년기에 그의 명망이라 할 만한 것은, 오직 레오스 제나첵이라는 재능있는 합창단원을 브룬의 지휘자로 키운 것 뿐이었다.
1866년부터 4년간 뭔헨의 식물학교수 나겔리에게 자신의 논문을 보냈지만, 들은건, 조밥나물을 교배해보라는 충고뿐.
멘델의 생전에 자신의 업적을 인정받을 기회가 주어질 뻔했는데, 그것은 다른사람의 연구결과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좋아하는 CharlesDarwin이 친구인 포케에게 멘델의 논문이 14번이나 인용된 책을 추천하였지만 그 자신은 그 내용을 깨닫지 못하였다.
멘델은 다윈과 자신이 죽은 후인 1900년에서야 비로소 재발견되었다.
-- 책 Genome내용 중에서
그의 말년이 재밌다. 허허... 그 위대한 발견을 해내고도, 주위에서 그리고, 자신조차도 알아주지 못하는 상황이란...